나는 임고생이다. 임용시험준비생이다. 수험생이다.
수능에서 은퇴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수험생으로 복귀했다
전당포 아저씨나 머스탱을 타고 강아지를 사랑하는 전직 킬러는 은퇴한지 몇 년이 지나도 실력은 녹슬지 않았지만 나는 아니다. 머리에서 쇳소리가 나지만 앉아서 공부를 한다. 재미없고 지루하지만 공부를 해야한다. 나는 시험국민이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은 '시험국민의 탄생'이다. 시험국민, 국민이 있으려면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으려면 국민이 있어야 겠지. 내가 시험국민인 이유는 우리나라가 시험나라이기 때문이다. 시험나라에 살고 있으니까 시험국민인거겠지? 시험나라에도 법이 있다. 매우 짧고 간단한 법이다. 시험을 봐서 합격(통과)해라, 네가 시험나라 국민인지 증명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쓰고보니 법이 아니라 하나의 계시? 진리? 같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읽은 자연 선택설말이다. 광종이 과거제를 실시했을 태어난 시험도 자연 선택설을 피할수는 없었나 보다. 끊임없이 변화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저자의 말처럼 시험은 이미 개천에서 사는 용들을 승천시키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시험은 사회에서 인정하는 통과의례이다. 우리 사회에서 시험은 아프리카 원시 부족들의 성인식이다. 시험나라에서 시험을 통과를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시험나라에서는 국민으로 취급 안해준다. 이제 시험은 개천용을 뽑는 성격이 아니다. 미꾸라지라도 되고 싶은 사람들이 허우적거리는 곳이 시험이다.
시험나라가 중간이 없어서 더 가혹하다. 시험에 통과한 사람, 통과하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얼마의 노력, 시간, 열정을 쏟아붓는지는 시험나라에서 중요하지 않다. 시험에 통과하냐 마냐가 중요하지.
시험나라에선 시험에 떨어지면 나의 모든 것을 부정당한다. 나는 부정당함이 싫었다. 내가 우리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아무 시험도 통과하지 못했을 때가 그랬다. 그 부정당함이 싫어서, 치욕이 싫어서 공부했다. 시험나라에서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임용시험 공부를 한다. 결국에 시험이 끝나고 이 나라에서 사람취급 받으려면 그럴수 밖에 없다. 시험나라에 반항하는 것보다 시험이 나에게 주는 압박, 부담, 부정, 고통, 피로, 따위를 견디는 게 더 익숙하다. 이미 수능 때 겪어봤으니까.
우리학교 면접을 봤던 날이 떠오른다. 내가 보았던 그 얼굴들, 나처럼 긴장과 상기되어 있던 그 얼굴들을 다시 시험으로 밀어내고 난 무엇을 얻었는가? 잘 모르겠다. 나는 시험에 합격한다고 모든 것을 얻어가는 승자독식을 원한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건 안다. 시험에 떨어지면, 통과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나의 시간, 노력, 젊음, 고통까지도 다 잃는다. 책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이 있다. 네 전부를 걸어서라도 출세해라. 글쓴이가 이런 의미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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